언제부턴가 ‘비건’이라는 단어가 참 익숙합니다.
그만큼 개개인의 입맛을 존중하는 사회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MICE 업계에서 일하던 때는 ’채식을 한다’라는 개념조차 다소 생소하던 때였습니다.
외국 참가자가 많은 특정 행사에서나 선배들을 통해 그런 메뉴를 따로 챙겨야 한다고 얘기를 들었죠. 사실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저로서는 채식 메뉴를 따로 챙겨야 한다는 게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2004년 광진구 소재 호텔에서 큰 행사를 진행할 때였습니다.
행사 마지막 날 밤, 갈라 디너를 위해 뷔페를 준비했지요. 행사를 잘 치르고 난 마지막 날이라서 참가자와 조직 위원회, 기획사를 포함한 모든 운영진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지막 만찬을 한 편에서 여유롭게 즐기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함께 현장을 진행하던 후배가 다급하게 저를 찾았습니다.
“대리님, 한 외국 참가자분이 컴플레인을 하고 있습니다. 빨리 와주세요.”
깜짝 놀라 달려가니, 한 외국인 참가자가 짜증이 난 얼굴을 하고 서 있고, 주위에 당황한 운영요원과 호텔 서버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제가 가장 선임자이니 세상 친절한 얼굴로 바꾸고 무슨 일이냐 물어보았습니다.외국인 참가자는 저를 보자마자 “Look, I am a vegetarian.” 이라고 말하며, 뷔페 메뉴에 자신이 먹을 음식이 없다고 컴플레인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위를 다급하게 둘러보며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빠르게 스캔했습니다.
문득 눈에 들어온 볶음밥..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Here's some fried rice. How about this?” 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그 참가자분은 “There’s egg in it.” 이라고 말하며 저를 더 흘겨보았습니다.
아뿔싸, 계란도 안 드시나 봅니다. 😥😥
샐러드만 드시라고 하면 왠지 더 큰일 날 것 같아 지배인님들께 부탁해 호텔 총괄 셰프님을 모셨습니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셰프님이 따로 좀 준비해 보겠다고 하셨고, 그제야 조금 누그러지셔서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
한 가지 에피소드가 더 떠오르네요. 😂
야근을 준비하며 회사에서 저녁을 시켜 먹게 되었습니다.
짜장면, 짬뽕, 볶음밥 등 이런저런 주문을 받아, 당시 막내였던 저는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한 선배님이 자신은 베지테리언이니 계란을 빼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요청하신 그대로 주문을 했고, 잠시 후 음식이 도착해서 회의실에 음식을 쭉 펼쳐 두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짜장면을 시킨 저는 맛있게 후루룩 한 젓가락 집어넣었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모여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저녁 먹는 소리만 간간 들리던 회의실 정적을 깨며 등장한 베지테리언 선배님,
“커터칼씨, 볶음밥이 왜 이렇죠?”😤
“네? 아.. 계란 빼 달라고 하셔서 그렇게 주문을..”
선배님은 계란을 빼면 다른 재료라도 넣어서 준비해야 하는 거라고 하시며 직접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고 결국 다시 만든 볶음밥을 받으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선배님과 저는 각각 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고, 그 선배님은 이제 채식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저는 계란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볶음밥도 계란볶음밥이 최고지요. 😍
하지만, 이제 슬슬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가 되니 당시 그분들 식단을 좀 더 살뜰히 챙겨 드리지 못한 게 아쉽네요.
다시 받은 볶음밥은 어떤 맛이었을까요? 중국집에서는 어떤 재료를 추가해 줬을까요?🤔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 같이 볶음밥 한 그릇 하면 좋겠습니다.
P.S. 당시 제가 근무했던 회사 바로 맞은편에 있던 중식당 마오의 계란볶음밥은 정말 정말 맛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