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PM의 임무를 맡았던 때가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
때는 2009년, 한창 대한민국에 국제회의 바람이 불고, 너도나도 멋있는 컨퍼런스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던 그때, 저는 처음 PM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처음 시작하는 학술대회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회사는 서울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학술대회를 주관하는 학회는 멀리 떨어진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제 고향 울산과 가까운, 조금은 익숙한 사투리가 정겨운 나름 애정을 가지고 진행할 수 있는 행사였습니다. 😻
첫 조직위원회 회의가 있던 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출장을 떠났습니다.
KTX를 타고 두 시간, 다시 택시를 타고 거의 한 시간을 달려 언덕에 있는 대학병원에 도착을 하였고, 조직위원 선생님들이 기다리고 계신 회의실 문을 조심스레 열었습니다.
이미 열 분이 넘는 선생님들이 자리에 앉아 일제히 저를 쳐다보셨고, 인사를 나눔과 동시에 사무총장님의 결의에 찬 목소리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박 대리님, 이 행사가 우리 국가에도 억수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중요한 행삽니다. 국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열의에 아주 가득 찬 선생님들이셨고, 매주 함께 모여 회의를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새벽에 만나자는 걸 간신히 오후 시간으로 조정하고 매주 하루는 회의를 위해 왕복 6시간을 이동하는데 보내며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
선생님들은 행사와 학회에 대한 사랑이 너무 충만하시다 보니, 걱정이 많으시고, 예산을 떠나서 아주 많은 준비를 하고 싶어하셨습니다.
키비주얼을 정할 때는 학 이미지에 다리와 부리 모양을 진지하게 토론하셨고, 호텔에 식수를 발주할 때는 음식이 남으면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하셨고, 공항에 참가자가 도착할 때 레드카펫을 깔아드려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셨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들께서 아침 9시에 미국의 한 기관과 온라인 화상회의 일정을 잡으셨고, 저도 꼭 같이 참여하기를 바라며 8시 30분까지 본인들이 있는 회의실로 와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새벽 세 시까지 자료를 준비하고, 잠시 눈을 붙이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아뿔싸!🙀 일어나야 하는 시간을 한 시간이나 넘겼고! 저는 씻지도 못하고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부랴부랴 택시, KTX, 또 택시를 타고 미친 듯이 달려갔습니다. 🚕🚅🚕
도착한 시간은 무려 8시 59분! 만나기로 한 시간을 29분이나 넘겨 겨우 회의실 앞을 도착했고, 저의 심장은 마구 쿵쾅거렸습니다.
흐르는 땀을 닦고 변명거리를 생각하며 조심스레 문을 열었을 때!
왠지 썰렁한 회의실에 한 구석에서 저를 보며 화들짝 놀라시는 사무총장님!
“엄마야 박대리님...” 😮
날벼락을 치실 줄 알았는데 선생님의 뜻밖의 온도에 오히려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우짜노.. 끝나뿌따…”
“네? 끝났…다니요?”
“아니.. 아침 일찍 회의 연결해 놓고 앉아있는데 갑자기 그 사람들이 8시에 나타나서 헬로~ 이카데요.. 알고봤더니 거기 써머타임이 있단다.. 그래서 우리끼리 하고 방금 끝나뿌따.. 박대리님 아침부터 이래 왔는데 우짭니꺼?”
갑자기 화가 끓어올랐지만 사실 제가 굳이 참석 안 해도 되는 회의였고, 선생님들이 저를 처음으로 걱정하고 미안해하시니 이때다 싶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뭐, 괜찮습니다! 이렇게 온 김에 선생님들과 회의 한 번 더 하고 가면 좋을 것 같은데요!” 😎
선생님들은 땀을 뻘뻘 흘리는 저를 보며 연신 미안해하셨고, 저는 그 주 회의를 따로 잡지 말고 바로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미안한 마음에 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셨고, 꼭 필요한 소수의 인원만 모여 평소보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회의를 끝냈습니다. 회의 결과에 만족해서 기분이 좋아진 선생님들은 처음으로 저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고, 저의 핸드폰 케이스를 보며 젊은 사람이 감각이 있어 좋다는 칭찬도 해주셨습니다. 🤩
열정이 많이 넘치셔서 조금 힘들었지만, 행사 당일 만찬에서 조직위원 선생님이 추천하신 지역 밴드의 ‘칠갑산’ 색소폰 공연에도 감동을 받으시고, 만찬 끝나고 저에게 ‘Mr.(행사명)’ 이라는 별명도 지어주신 우리 선생님들.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저를 많이 궁금해하셨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선가 지나치다 우연히 한 번 만나 뵙게 되면 좋겠네요ㅎ
“우짜노~ 끝나뿌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