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E 행사 현장에서 우리는 정말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 냅니다.
어떤 에피소드는 오랫동안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지만, 어떤 에피소드는 단지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죠. 여러분은 어떤 에피소드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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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이 납니다.
이 에피소드는 저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어서,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족쇄처럼 저의 직업병으로 자리잡게 되었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구요?
때는 2017년도, 제가 PCO로 근무하면서 주로 행사의 사전 준비와 현장 운영 업무를 맡아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약 1,500명 규모의 참가자가 있는 학술 대회의 후원전시 담당을 맡아서 56개 업체 사이 커뮤니케이션을 혼자 전담했어요. 이전에도 같은 업무를 담당해본 적이 있기에, 업무 자체가 새롭거나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이전보다 더 잘 해내려는 욕심은 있었죠.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던 성과일까요? 제 파트는 큰 문제 없이 모든 것이 잘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행사 하루 전, 정신없이 현장 세팅중인 저에게 한 메인 후원사 담당자가 달려오더니,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다급하게 흘러 나왔어요.
“담당자님, 저희 로고가 전부 잘못 들어가 있는데요?”
심장이 쿵 소릴내며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 짧은 순간 사회초년생에 불과했던 저의 머릿속에는 정말 수백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어요.
'어떡하지? 저기 몇 억 이상 낸 곳인데? 내가 로고를 잘못 넣은 거야? 하필 저기를? 미쳤나?
저 후원사에서 화나서 후원 취소한다고 하면 어쩌지? 회사에서 나한테 다 물어내라고 하는거 아닐까? 진짜 어쩌지??? 퇴사해야하나???'
“확인해볼게요, 잠시만요!”
담당자로서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히스토리 파악을 위해 메일과 폴더를 뒤지는 손가락은 말 그대로 덜덜 떨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오싹할만큼요.
천만다행으로 전달받은 로고를 잘못 넣은게 아니었습니다. 후원사 로고가 얼마 전 새롭게 리뉴얼 되었는데 담당자가 저에게 해당 로고를 전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최종 발주 전 모든 제작물 시안을 공유했음에도 저에게 수정 요청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 사실이 확인되자 이번에는 후원사 담당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지만… 저는 그제서야 작게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결했냐구요?
당장 다음날이 행사 첫 날이라,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전시장 입구에 들어가는 가장 큰 현수막 하나만 급하게 새로 발주하여 바꾸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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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이후로 로고가 들어가 있는 것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두번, 세번씩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홈페이지, 배너, 현수막, 브로셔, 프로그램북 등등 각종 인쇄제작물 위치에 로고가 올바르게 잘 들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스스로를 믿지 못합니다. 최종 발주 전 로고 종류와 순서를 하나하나 맞춰보면서, 잘 들어가있는지 체크해야만 직성이 풀려요. 심지어 혼자서 체크하는 것도 아닙니다. 동료 직원이나, 인턴 사원에게도 “그거 로고 잘 들어가있는지 한번 더 확인해”를 입에 달고 삽니다.
'아니, 로고 하나 잘못 들어간 게 큰 문제인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우리 MICE인이라면 알 거에요. 어떻게 생각하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정말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작디 작은 로고 하나라는 것을요.
로고에는 브랜드 가치와 방향성, 정체성이 모두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해당 조직을 대표하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상징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로고를 사용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중요하지만, 특히 MICE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고 느껴집니다. 왜일까요?
주로 MICE에서는 주최사, 주관사, 후원사, 전시사를 나타낼 때 로고를 사용하는데요.
이들은 행사가 열릴 수 있도록 만들어준 존재이자, 직접적으로 예산과 관련이 있는 존재 혹은 행사 운영을 위한 크고 작은 도움을 준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로고를 명기함으로써 단순히 ‘이들이 여기 참여했다’는 정보를 주는 것 뿐이 아니고, ‘이들 덕분에 이것이 가능했습니다’를 말하며 간접적인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하는 것이죠. 행사에서 이들의 중요도와 영향력은 매우 크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로고와 관련된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순간에 이름이 잘못 불렸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을 리 없어요. 단순한 사과의 말로는 수습할 수 없는 정말 큰 실수이자 실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로고를 잘못 넣는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프로포즈를 할 때 내 여자친구의 이름을 전 여자친구의 이름으로 잘못 부르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어때요, 상상만으로도 오싹하지 않은가요?
그러니 메인 후원사의 로고를 전부 잘못 넣은 줄 알고 그 순간 제가 퇴사까지 생각한 것이 무리는 아니죠.
제가 한 번의 위기를 겪은 이후로 각종 로고에 집착하게 된 것, MICE인이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줄 것 같아요.
더운 여름, 시원해지시라고 오싹한 직업병을 준비해봤어요! (문구박스표 납량특집👁🗨) 여러분에게는 로고와 관련된 어떤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비슷한 경험이나, 완전 다른 경험이 있나요? 있다면 저에게 제보해주세요!
저는 다음 시리즈에서 사진과 관련된 저의 직업병을 풀어놓을 예정입니다. 갑자기 왠 사진이냐구요?📷
기대해주세요. 듣고나면 이번에도 모두 공감하게 될 거에요😎
여러분이 가진 MICE 직업병과 에피소드에는 무엇이 있나요? 건전지에게 슬쩍 제보해주시면, 함께 소개하겠습니다!
(내 에피소드와 직업병 제보하기 → april@projectmic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