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디 말하기도, 다시 떠올리기도 부끄러웠던 저의 실수담을 구독자님들에게만 용기내서 공유해보려해요. 6년 전, 코엑스에서 행사를 준비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오래 전이죠?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이때의 기억과 감정은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하답니다..! 😂

일반 참가자 1,500명 이상, 3일간 열리는 국제회의에서 저는 전시 담당자로 참여했었습니다. 코엑스 3층 전시 D홀을 가득 채운 50개 이상의 후원사와 전시사에게 각종 자료를 안내하거나, 전시장 이벤트를 운영하는 것이 저의 주 업무였죠. 행사 하루 전부터는 코엑스 옆 호텔에서 숙박하며 행사를 준비했는데요, 저는 등록 담당자(B씨), 그리고 사무국 인턴(C씨)와 함께 3인 1실로 같은 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행사 하루 전날도 새벽까지 일하느라 막상 저희가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은 정말 짧았어요 😆

행사 첫 날은 모든 중요한 이벤트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등록, 학술, 전시, 사무국, 사교행사… 모든 팀원들이 함께 노력한 덕분에 다행히도 큰 사건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답니다. 저도 전시장 오픈, 전시 개막식이라는 큰 이벤트를 연달아 끝내고 나니 “와, 큰 거 다 끝냈다.” 하는 안도감이 들면서 그제서야 모든 긴장이 풀리더군요.

하지만 그렇게 긴장을 풀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다 함께 새벽에 기진맥진하여 숙소로 돌아와서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누워서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한 바로 그 때! 제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이 새벽에 왜 알람이…’ 라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봤더니 행사 PM의 이름 세 글자가 보였어요. 비몽사몽 전화를 받는 저에게, PM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어보더군요.

‘A씨, 지금 어디야?’

😱

네. 말 그대로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쎄한 느낌과 함께 시계를 확인해보니 시간은 이미 9시 30분. 등록과 학술 파트는 이미 오픈이 되었어야 하는 시간이였어요. ‘지금 이게.. 와… 진짜 죄송해요… 늦잠 잔 것 같아요… 바로 준비하고 갈게요 너무 죄송합니다…’

세상에… 행사 당일, 담당자가 늦잠을 자다니! 😫

당황해서 더듬거리는 저에게, PM이 다시 물어보더군요. ‘B씨도 거기 있어?’ 놀라서 오른쪽 침대를 바라보며 ‘B씨요?’라고 크게 외쳤어요. 제 목소리에 B씨가 자고있다가 깜짝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나더군요. ‘아… 네 B씨도 여기 있어요…’ PM은 어이없다는 듯 저에게 다시 물어봤어요. ‘하… 그럼 C씨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더니 자고 있는 C씨의 모습이 보이지 뭐에요. ‘네… C씨도 여기 있네요… 저희 바로 갈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C씨를 깨웠어요.

세상에, 세 명이 모두 늦잠을 자다니! 아무도 못 일어나다니!

세 사람 몫의 알람이 분명 모두 울렸을텐데, 너무 피곤하고 긴장이 풀린 상태로 잠들었던 나머지 아무도 알람을 듣지 못했던 거에요. 심지어 B씨는 늦잠을 잔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한 친구였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저희는 정말 10분만에 준비하고 총알처럼 행사장으로 튀어나갔습니다. 저희 자리를 메꾸고 도와준 팀원들과 운영요원들 덕분에 큰 사고가 터지진 않았지만 저희 셋은 정말 하루종일, 팀원들에게 끊임없이 사과하며 하루를 보냈어요..🍎

오른쪽과 왼쪽에 늦잠을 잔 팀원들의 모습이 나란히 보였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기도 해요 🤭 하지만 내가 담당자인 행사에서 오픈 시간까지 늦잠을 자다니… 다시 떠올리며 이걸 쓰는 중에도 손에서 땀이 나는 것 같습니다. 긴장을 너무 풀어도 이런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낀 이후, 저는 이제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답니다.

후! 우리 모두 적당히 긴장하면서 살아요! 😏

‘헌내기’..  잘 아시다시피 업무에 대한 강도와 요구되는 책임감도 슬슬 높아지고 ‘새내기’에게 맡기기는 애매한 잡일들이 쌓이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라떼’에도 헌내기가 되면서 그런 고민을 했었는데, 시대가 많이 변했어도 그런 업무문화는 크게 변하지 않은것 같네요.

저도 헌내기 시절 똑같은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고민을 하며, 일에 치여 살아가다 보니, 어느덧 ‘잡일’을 하지 않기 시작하는 주니어를 지나, ‘잡일’이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시니어 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저 대신 저희 조직의 ‘헌내기’들이 그 잡일들을 맡아주고 있지는 않나 반성을 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된다라는 ‘라떼’식의 조언 대신, 제가 헌내기 시절 어떠했는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갑자기 울컥하네요.) 저는 일의 중요도나, 특정 업무에 대한 저의 책임에 대한 정도를 크게 신경쓰지 않고, 업무가 주어지는 대로, 순차적으로 일 처리를 많이 했던것 같습니다. 마음이 급하니 이 일 했다가, 저 일 하는 등 두서없이 일했던 적도 많았던것 같습니다.

일이 많이 쌓일 때, 업무계획서를 찬찬히 살펴보면 어떨까요.

업무를 요청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숨이 넘어갑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분명히 조금씩은 미루거나 순서를 조정해도 될 업무들이 있을겁니다. 물론 아직 헌내기 시절에는 일의 중요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업무를 미루기 위해서는 관련된 사람들과의 조율이 필요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것들이 잘 안될 때에는 선배님들, 혹은 팀장님들에게 SOS를 요청해 보세요. 에어팟이 없던 시절 유선 이어폰이라도 껴야 업무의 능률이 오르는 저였지만, 혼자서만 업무를 할 수 없는 MICE 업계이기에 종종 이어폰을 빼고 선배들에게 기댔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과 업무를 조금씩 공유해 보세요. 아무리 바쁜 이 업계도 가끔 시간이 조금 남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먼저 다가가서 도와주고, 필요할 때는 도움을 요청해 보세요. 재미없던 일도 같이하면 재미를 느낄때가 생각보다 많을겁니다. 힘든 이 바닥의 일도, 쉽게 떠날 수 없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동료들의 힘이 될수도 있습니다.

사실 제가 제언해 주는 여러 사항들은 어느정도의 노력과 경험이 필요한 또 하나의 ‘업무스킬’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많은 고민을 이겨내고 MICE 산업에서 귀한 ‘주니어’가 되시길 바랍니다.

저도 우리 조직의 헌내기들의 잡일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음.. 친목도모 등산이나 치맥 번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