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의학회 관련 세계대회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당시 제가 소속해 있던 회사에서 개최했던 행사들 중 행사 규모나 조직위원회의 수준과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던 행사여서 모든 팀원들이 많은 노력과 애정을 기울여서 행사 준비를 했던 국제의학학술대회 현장이었습니다.
행사의 Congress Banquet 프로그램 중에는 참가자들의 장기자랑 순서가 있었습니다. 사전에 국가별 참가자들로부터 장기자랑 관련 의향을 접수 받아 미리 정해진 순서로 장기자랑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Banquet의 사회를 담당하던 사교행사 위원장님께서 행사준비를 위해 수고한 PCO 팀도 장기자랑에 참여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Banquet 시작 2~3시간 전에 주셨고, 저는 당연히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행사준비만으로 벅찬 상황에서 장기자랑으로 무대 출연까지 하라니 너무 무리한 요구이고, PCO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으신다고 생각되어 섭섭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끼가 넘치는 사교행사위원장님의 유쾌한 사회 덕분에 국가별 장기자랑이 아주 순조롭게 즐겁게 진행되던 그 시간, 사회자가 이번 대회를 위해 수고해준 PCO팀의 장기자랑이 있겠다는 멘트를 하였습니다.
행사 진행을 하고 있던 저는 너무나 놀라서 사회자와 팀원들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순간 사회자와 모든 참가자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다급하고도 절박한 마음으로 다행히(?) 옆에 계시던 회사 대표님의 손을 잡아 끌고 팀원들과 함께 무대위로 올라갔습니다. 저희는 아바의 댄싱퀸을 부르기로 하였고, 음향팀에서는 MR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사실은 말입니다.🗣
저와 사교행사위원장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팀원의 주도로 팀원들은 이미 댄싱퀸의 노래에 맞춘 간단한 안무를 준비하고 그 짧은 시간 연습까지도 마쳤다고 하더군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저와 영문도 모르고 무대위로 같이 올라가 주신 당시 저희 회사 대표님뿐이었습니다.
다행히 팀원들의 멋진 춤솜씨로 저의 부끄러운 가무는 상당부분 가려질 수 있었지만 행사 종료 후 결과보고를 위해 보았던 당시 영상 촬영분은 한번 보고 다신 보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모든 업무를 마무리하고 조직위원회 해단식날이 되어 사교행사위원장님과 대화 중 알게 된 사실은, PCO들도 업무만이 아닌 참가자와 사교행사를 같이 즐기고 추억을 남기게 하고 싶었던 것이 사교행사위원장님의 뜻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짧은 순간의 충격과 당황스러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다시는 갑작스러운 무대 출연을 하고 싶진 않지만, PCO들도 행사의 하나의 주체로서 조직위원회와 참가자와 함께 행사를 즐겨도 된다는, 그리고 즐길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작지만 당연하고 꽤 기분 좋은 깨달음을 얻게 된 계기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PCO로서 행사장과 특히 사교행사 현장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자리이지만 잘 준비한 각본대로 현장이 잘 진행되었을 때 조금은 긴장을 늦추고, 그 현장과 무대를 즐겨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